1. 옥포해전
2. 합포해전
3. 적진포해전
4. 사천포해전
5. 당포해전
6. 당항포해전1
7. 율포해전
8. 한산도대첩
9. 안골포해전
10. 장림포해전
11. 부산포해전
12. 당항포해전2
13. 명량해전
14. 노량해전

13.명량해전 (1597. 9. 16)
  조선함대 일본함대
사령관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

알려지지 않음
전력

13척의 전선과 32척의 작은 선, 약 1500명의 수군

알려지지 않음
사상자 및 피해 알려지지 않음

30여척 파괴


1597년 7월 16일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원균은 칠천량전투에서 대패하고, 전투 후에 죽었다. 약 160여척에 달했던 조선 함대의 전선은 칠천량전투를 치르면서 거의 모두 격침되었다. 전투 중에 배설장군은 12척의 전선을 이끌고 전장을 빠져나왔다. 칠천량전투에서의 패배 이후에 조선 조정은 이순신 장군을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하였다. 이에, 이순신 장군은 그의 휘하에 있던 장수와 수군들을 모아서 남하하였다. 8월 19일에 장군은 배설장군이 이끌고 나왔던 전선들을 회령포에서 인수하였고 군량미, 화살, 활 등을 모았다. 선조가 이순신 장군에게 수군으로 싸우지 말고 육군으로 싸우라 하였으나, 장군은 그의 유명한 말인, “신에게는 아직 열 두척의 전선이 남아있나이다”을 담아 선조에게 보내었다. 이순신 장군은 계속해서 수군의 기지를 서쪽으로 움직여갔다.

9월 16일에 탐망선이 수많은 일본 전선이 수군 본영으로 향하고 있다고 보고를 하였다. 이에, 이순신 장군은 함대를 이끌고 오늘날 해남군에 있는 수군 본영 앞바다에서 일본 함대를 기다렸다. 133척의 일본 전선이 진도와 화원반도 사이에 있는 좁은 바다인 울돌목으로 들어왔다. 울돌목의 가장 낮은 수위는 약 1.9m이고 조류의 속도는 최대 11.5노트이다. 일본군들은 전선을 분리하여 울돌목으로 들어올 수 없는 아다케선은 앞에서 대기하였다. 133척의 비교적 아다케선보다 적은 전선들만 울돌목을 통과하여 조선함대에 공격을 해왔다. 그러자, 이순신 장군은 배를 일자로 편성하는 일자진을 펴도록 명령하였다. 개전 이후, 다른 장수들이 공격을 머뭇거리고 있자, 이순신 장군의 배가 선두에 서서 공격을 하였다. 이순신 장군은 다른 전선에게도 공격을 명하고 일본 함대로 돌진하였다. 곧 조류가 바뀌자 남아있던 조선 함대의 전선들도 이순신 장군을 따라 공격하였다. 순식간에 31척의 일본 함선이 파괴되었고 일본군은 해질녘에 퇴각하였다. 이순신 장군이 결코 포기하지 않고 대응한 덕분에 승리를 얻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