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옥포해전
2. 합포해전
3. 적진포해전
4. 사천포해전
5. 당포해전
6. 당항포해전1
7. 율포해전
8. 한산도대첩
9. 안골포해전
10. 장림포해전
11. 부산포해전
12. 당항포해전2
13. 명량해전
14. 노량해전

8. 한산도대첩 (1592. 7. 8)
  조선함대 일본함대
사령관 이순신, 이억기, 원균 와키사카 야쓰하루
전력 59척의 판옥선과 50척의 작은 배들 73 척
사상지 및 피해 없음 59 척 파괴

일본의 통치자였던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군에게 전령을 내려 수군끼리 연합하여서 조선 함대에 맞서라 명하였다. 하지만 와키자카 야스하루는 혼자서 출전하기로 결정하였다. 7월 7일 와키사카는 일본 함대를 이끌고 당시 일본 수군의 총사령부가 있었던 진해를 떠났다. 와키자카의 함대는 거제도 부근에 도착하여 견내량에 정박하였다. 정박하고 있던 일본 함대를 본 양치기가 이를 조선 함대에 알렸다. 조선 함대는 일본 함대를 넓은 바다로 유인하기로 하였는데, 이는 견내량 앞바다가 좁아서 판옥선의 진행방향을 바꾸기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일본군은 전투 중간에 수세에 밀리면 육지로 도망갈 공산이 컸다.

hansando대 여섯척으로 구성된 분대는 견내량으로 향했고, 나머지 함대는 한산도 앞바다에서 기다렸다. 분대는 일본 함대를 공격하다가 퇴각하는 것처럼 하여 일본 함대를 유인해 내었다. 이순신 장군은 이 전투에서 장군의 가장 유명한 전법중 하나인 ‘학익진’을 펼치도록 명령하였다. 조선 함대는 학익진을 취한 후 즉시 포문을 열어 공격했으며, 첫 공격으로 인해 2~3척의 일본 전선이 순식간에 침몰되었다. 조선 함대는 여세를 몰아, 일본 함대의 대장선에 공격을 집중하면서 일본 함대를 둘러싸고 공격을 펼쳤다. 전투가 수세에 몰리자, 일본 장수 와키사카 야스하루는 14척의 배를 몰고 퇴각하였다.